Badger

Il bacio della morte
어두운 공간 안에 뚜벅뚜벅 발소리가 울렸다.
온몸이 밧줄에 묶인 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천천히 인식했다. 온몸은 쑤시고 머리가 아팠다. 팔은 뒤로 묶여 있었고, 밧줄은 강제로 앉혀 있는 의자에까지 한꺼번에 연결하고 있었다. 심지어 양발은 의자 다리에 각각 한 쪽씩 따로 묶여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수도 없이 수라장을 겪어온 일라이어스는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알 수 있었지만, 그걸 인식의 범위 내로 끌고 들어오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어째서?
왜?
“정신이 들었나보네요….”
일라이어스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소르디…?”
“예~ 당신의 작은 소르디입니다….”
불도 켜져 있지 않은 어두운 지하실 안. 발소리와 함께 나타난 건 지오바니 소르디의 아들, 리카르도 소르디였다.
일라이어스는 차가운 것이 뱃속을 채우는 걸 느꼈고, 곧이어 불타는 분노가 그 위를 뒤덮는 걸 느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리카르도?”
언젠가 배신자들을 단단히 묶어두던 의자에, 앞장서 그들을 처치하고 지오바니의 아들을 지켰던 남자가 묶인 채 으르렁거렸다.
“내가 널 어떻게 살려줬는데, 이렇게 배신을 해?!”
“죄송합니다만, 일라이어스….”
빨간 불빛이 어둠 속에서 작게 타오르며, 잠시 주변을 밝혔다. 그것에 비친 리카르도의 녹안은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후우, 하고 연기를 불어내는 소리가 들리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 말을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일라이어스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리카르도의 손에 쥐인 담배는 허공을 가르고 아래로 향했다. 톡, 바닥에 떨어진 담배의 불빛이 지그시 눌러오는 구둣발에 짓밟혀 사라졌다.
“9번가와 21번가, 양쪽에 사람을 숨겨뒀더군요….”
어느 구역이라고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활동 영역은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아니까. 일라이어스는 구차한 변명 같은 걸 할 생각은 없었다. 자존심이기도 하고, 그런 게 작은 소르디에게 통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자가 마피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자신도 그래왔다. 하지만.
“…너를 위한 일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리카르도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 마치 뱀과 같은 - 눈길로 일라이어스를 내려다보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보이는 그의 석고 같은 얼굴은, 이미 몇 년 전 유명을 달리한 그의 친구이자 보스를 떠오르게 했다.
지오바니. 그는 배신자를 처단할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그의 좋은 면을 모두 빼어 닮고야 말았다. 한때는 좋지 않은 부분을 빼어 닮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건만.
“왜 이런 선택을 했지? 네 자리가 불만이었던 거냐? 결국은 네가 보스의 자리를 물려받을 거다. 내가 너 외의 누구를….”
“필요 없다고.”
리카르도는 날카롭게 잘랐다.
“다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십년이면 충분하다고.”
“충분하지 않아!”
일라이어스는 믿을 수 없는 심정으로 외쳤다.
“너는 지오바니의 아들이다! 네가 아닌 누가 패밀리를…!”
“범죄 조직이죠, 일라이어스.”
리카르도는 소름끼칠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시죠, 여기는 시칠리아도 아닌데…. 패밀리는 끼리끼리 부르는 이름일 뿐이고~.”
“리카르도 소르디!”
“그렇게 안 불러도 여기 있습니다….”
“진정 조직을 배신할 작정이냐?”
리카르도는 잠시 침묵했다.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신 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났어야죠…. 배신자를 모두 처단하고 살아남았으면, 이제 절 놔줄 차례였습니다.”
“이 조직은 네 아버지와 내가 만든 것이야!”
“예, 그러니까 당신이 보스 자리에 올라가도록 지지했고 도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보은은 거기까지니까….”
어둠 속에 깊이 녹아든 녹색 눈동자가 음산한 그림자처럼 일라이어스를 마주 보았다.
“그래서 떠나겠다는 건데. 히트맨을 붙이신 건 누구죠~?.”
“네가 감히 어떻게, 이 패밀리를!”
“예, 제 의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죠….”
리카르도의 뒤쪽에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둘, 혹은 셋. 일라이어스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언더보스(주: 마피아의 2인자, 뒷 일을 맡아 하는 담당자)로서 리카르도가 이미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것은 그의 절망감을 조금 더 덜어주진 못했지만. 저런 재능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어째서. 차라리 그가 자신을 배신하고 패밀리를 손아귀에 쥐려고 한 것이었다면 그는 웃으며 떠나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오바니의 아들은 그 힘을 가지고 정확히 반대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배신하고 조직을 와해하는 쪽으로.
“카밀로나 비아넬리는?”
그들은 일라이어스에게 충성을 바치는 부하들이자 심복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된 이상, 그들 역시 무사하진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리카르도가 장악한 세력이 그렇게까지 크다면 자신이 먼저 알아차렸을 터였다. 리카르도는 조용히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피우겠습니다….”
손윗사람 앞에선 함부로 담배를 태우지 않는 것이 예의다. 그러니, 리카르도는 더 이상 일라이어스를 손윗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시 한번 빨간 불빛이 작지만 환하게 불타올랐다.
리카르도는 골초였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은 그의 가족이 모두 죽었던 그 이후부터였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거의 잠시도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게 되었다. 일라이어스는 그걸 나쁘게 생각하진 않았다. 원래 지오바니 소르디도 아이가 생기기 전까진 항상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리카르도가 담배를 찾았던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더 이상 ‘작은’ 소르디가 아니라는 것 역시.
“그들도 네가 손을 댔나…?”
일라이어스의 질문에 리카르도는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아뇨…. 물론, 무사하다고 말씀드릴 순 없지만.”
우위에 선 자는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순간 누가 우위에 서 있는지는 극명했다. 그들의 행방이나 무사 여부는 더 이상 일라이어스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는 암시. 일라이어스는 천천히, 그리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리카르도의 긴 그림자 뒤에 서 있는 숨은 그림자들은 누구 하나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휘하의 자들이었다면 일라이어스는 실루엣만으로도 그들이 누군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말디니냐…?”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
안드레아 말디니. 그들의 세력을 다투는 자이자, 일라이어스에게 유일하게 반기를 들 정도의 세력을 지닌 자. 하지만 그딴 녀석에게 세력을 넘겨준다고?
“네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조용히 끝날 수 있을 것 같으냐?”
분노에 떠는 일라이어스의 말에, 리카르도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한번 담배의 불빛이 붉게 반짝였다. 일라이어스는 그 찰나에 엿보이는 리카르도의 눈을 포착하려 애썼다.
눈. 그 망할 녹색 눈에 담긴 진의를, 감정을, 한 조각 회한이나 망설임을 알기 위해.
그러나, 늙었으나 예리함을 놓지 않은 늙은 마피아의 시선이 소르디의 시선과 마주쳤을 때. 그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텅 빈 눈.
바로 눈앞에 자신을 잡아 놓으려던, 그렇지 못할 시 죽일 각오까지 되어 있던 자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믿어지지 않는 어둡고 공허한 눈.
일라이어스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뱉었다.
그의 앞에서 반항적으로 치켜뜨던.
공포와 공황에 잠겨 갈 곳을 알지 못하던.
아래로 내리깔고 조용히 수긍의 뜻을 표하던.
단단히 가라앉아 결국 둘도 없던 친우의 뒤를 잇게 되리라 예측했던.
그런 눈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거나.
“소르디….”
탄식 같은 일라이어스의 부름에, 리카르도는 폐부에 가득 찼던 연기를 천천히 뱉어냈다. 그와 함께 느릿하고 나른한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제가 드릴 말씀은, 이 길이 어떻게 끝나던….”
담배를 잡은 검은 장갑에 반쯤 가려져 있던 진록색의 늪이, 그의 대부를 향했다.
“그쪽이 제가 바라는 길이란 겁니다.”
리카르도는 남은 꽁초를 주먹 안에 쥐었다. 가죽이 상하던 신경쓰지 않고 손아귀 안에서 짓이긴 꽁초는 부스러진 쓰레기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뚜벅, 뚜벅, 단 두 걸음만에 그는 일라이어스에게 다가왔다.
진한 말보로 레드의 향이 밴 검은 장갑이 일라이어스의 양쪽 관자놀이를 덮었다.
그리고 거칠한 ‘작은 소르디’의 입술이 대부의 이마에 닿았다.
“Mi fa male il cuore, padrino.”
입술을 떼며 리카르도는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일라이어스를 놔준 채 몸을 돌렸다. 뒤에서 그를 기다리던 자들을 향해 끄덕, 고개짓을 한번 한 뒤 그대로 지하실을 나섰다.
“작은 소르디! 리카르도!”
일라이어스의 절규는 지하실을 울린 총소리와 함께 그대로 뚝 끊어졌다. 그것은 배신감일까, 아니면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조차 않는 것에 대한 분노였을까.
덜컹거리는 녹슨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자, 햇빛이 스며들어오는 건물 안에 긴 코트에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안경을 낀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리카르도에게 내밀었다. 리카르도 소르디는 건물 구석에 남아 있던 철제 프레임 위에 서류 가방을 얹고 덜컥 잠금쇠를 열었다. 그 안에는 여러 장의 서류가 들어 있었다.
“살펴 보십시오.”
남자는 정중히 말하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리카르도는 장갑 손가락을 당겨 벗으며 서류에 눈을 흘려 보냈다. 이미 몇 년이나 이런 일을 해오며 익숙해진 일.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일. 넉넉한 시간을 들여 충분히 몇 번을 훑고는 말했다.
“틀림 없네….”
“물론입니다.”
리카르도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자, 남자는 자신의 가슴 포켓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그는 뚜껑을 열고 바로 사인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 리카르도의 손에 정중히 넘겼다. 리카르도는 사인이 필요한 몇 곳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고, 능숙한 필체로 일라이어스의 사인도 적어 넣었다. 수년 간 연습해 와, 아주 특별한 전문가가 아니면 누구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리카르도는 만년필을 남자에게 돌려주었고, 그가 만년필을 수납하고 서류를 정리해 넣는 사이 다시 장갑을 끼었다.
“그럼, 여기에서 인사하도록 하지….”
리카르도의 말에 남자, 패밀리의 콘실리에리 로렌조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작은 봉투에 챙겨 넣은 서류를 리카르도에게 건네고, 나머지 서류가 들어있는 서류 가방을 자신이 들었다. 그 안에는 패밀리의 나머지 지분을 어떻게 정리할지, 어떻게 말디니의 조직에 치명타를 입혀 그가 흩어지는 다른 크루들을 넘보지 못하게 할지 모두 정리되어 있었다.
“정말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보스의 뜻이라면.”
“이젠 보스도, 언더보스도 아니야….”
“다른 자들에겐 그렇겠지요. 하지만 원한 만큼 은혜도 잊지 않는 게 저희 아니겠습니까.”
리카르도는 가볍게 손을 저었고, 남자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리카르도는 봉투를 정장 안쪽 포켓에 챙겼다. 너무 단촐한 차비였지만, 어차피 떠나기 위한 짐은 이미 차에 실어둔 상태였다.
이걸로 끝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언젠가 계획하던, 그러나 전쟁이 터진 순간부터는 그것이 바로 ‘지금’이 된 그 순간.
이게 과연 옳은 일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부친의 친구들과 패밀리의 조직력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그대로 영영 마피아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지금 하던 짓을 그만두었을 때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이미 진작부터 마지막을 준비하면서도 최후의 트리거를 당기지 못했을 뿐.
그러던 것이, 2차 전쟁이 터진 그 순간 불이 붙었을 뿐이다.
이미 까맣게 타버려 재만 남았던 것 같았던 분노도, 증오도, 절망도, 그리고 마지막을 위한 도화선도.
그러니까 이제 떠날 것이다.
전쟁을 향해.
거기서 기다리는 것이 되돌아올 이 없는 복수일지,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환멸이 들었던 삶의 종지부일지.
그건 알 수 없었다.
그저 이젠 삶이 그에게 내릴 키스를 기다리기 위해.
“Ciao, 로렌조. 다시 볼 일 없길.”
“건강하십시오, 보스. 아니 시뇨르 소르디.”
리카르도 소르디는 단 한 명의 배웅을 받으며 건물을 뒤로 했고.
그렇게 과거와 작별했다.
* Il bacio della morte : 죽음의 키스
* Mi fa male il cuore, padrino. : 마음이 아프군요, 대부님.
* Ciao :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