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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아침부터 머신이 말썽이었다. 에스프레소의 물을 멋대로 뱉고, 꼭 커피 찌꺼기로 우린 듯한 양에 맛까지. 향은 말할 것 없이 죽어버렸다. 어제 마감하면서 큰 이상도 없었고 기계는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있어 큰 파손이나 이상을 보였다면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런 증상도 없이 대뜸 고장 난 머신을 한참 바라보았다. 모카 포트로는 만드는 양이 한계고. 이 난리를 어쩐담. 리카르도는 한참 턱을 괴었다가 이윽고 업자를 불렀다. 오후 장사는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단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제법 믿음직스럽게 들린다. 그러나 리카르도는 한 귀로 흘린다. 사장이 된 지 8년, 대부분 겉치레뿐인 말이란 걸 누가 모르겠나. 뿔이 난 고객을 대할 땐 저자세. 만국 공통 자세였다.

“으읅-”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나타난 고양이 한 마리가 길게 울었다. 며칠 전부터 리카르도에게 밥을 얻어먹기 시작하더니 이젠 제법 애교를 부릴 줄 아는 흰 고양이. 리카르도는 가게 찬장 한 곳에 잘 놓아둔 고양이 사료 캔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탁, 가벼운 소음과 함께 열린 캔을 부드러운 크림색 접시에 담아 물과 내어준다. 깨끗한 물, 아마 맛이 괜찮을 식사. 덩치는 제법 있는 듯, 없는 듯 애매한 고양이었는데. 리카르도는 이름이 무어냔 지나던 행인에게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집 아이는 아니고, 가끔 밥 먹고 가는 식구란 뜻의 제스처였다. 리카르도의 태도에 같이 장난스럽게 웃은 행인들이 떠난다. 고양이는 배부르게 식사를 즐긴다.

그리 굶고 다니는 건 또 아닌 모양이다. 리카르도는 그 모습을 내려보다 작업복을 입고 걸어오는 남자를 향해 손짓했다. 10월이 지났다고 해서 이곳의 날씨가 급변하는 건 아니니까. 한풀 꺾인 더위에 겨우 숨을 쉬기는 하겠지. 리카르도는 남자를 위해 가볍게 에어컨을 틀었다. 단골 손님 몇 분은 이 바람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차라리 창을 여는 걸 더 추천했다. 바닷가의 바람이 얼마나 싱그럽냐며.

짠 내음이 아니고? 리카르도는 잠시 스친 기억을 애써 갈무리하며 머신을 수리하는 남자의 뒤에 선 채 지켜본다. 큰 문제는 아니라면서도 뚜껑을 여닫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밸브 몇 개를 교체해야 한단다. 재고는 차 안에 있으니 가져와도 되겠냐기에 리카르도는 고갤 끄덕였다. 압력 문제 아니면 뭐 그다지 상관 없었다.

밸브 몇 개를 빠른 손이 교체한다. 스패너와 볼트가 맞물리는 소음을 좀 견디지 못해 나오면, 어느새 식사를 깨끗하게 비운 고양이가 길게 울며 대꾸했다. 무슨 일 있었냔 듯한 태도에 리카르도는 헛웃음을 지었다. 뭘 알긴 하고? 손짓 하니 발치로 훌쩍 다가온 고양이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아마도 흰 고양이. 모래 먼지와 바닷바람을 맞아 묘한 바다 냄새가 나는 고양이. 리카르도는 동그란 머리통을 한참이나 쓰다듬었다. 곧 커피를 다시 내려야 한단 사실도 잊고.

“우웅?”

리카르도가 가게 앞 의자에 털썩 앉으면, 고양이는 훌쩍 뛰어올라선 대범하게도 리카르도의 허벅지를 차지하고 앉았다. 해가 따뜻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까. 수리기사를 향해 가벼운 감사 인사와 함께 밸브 값을 지불했다. 머신의 AS 기한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기사는 기초적인 값만 내어도 된다고 했다. 기사가 마실 커피 값 정도는 팁으로 주는 게 예의지. 리카르도는 지폐를 그에게 건네고, 그는 웃으면서 가게를 떠났다. 어디 지나는 길에 시원한 맥주나 마시든가. 리카르도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침 시간이 지나 한산했다. 관광객 몇은 곧장 성당을 보러 떠나버리곤 했으니, 광장은 소란스러운 듯이 또 한산해진다. 30분 뒤면 관광 가이드들과 사람들을 가득 실은 배가 들어오니 소란스러워지지 않을까. 한참을 발치에서 굴러다니는 고양이의 콧등을 톡 건드린다.

“고양이. 이제 집에 가야지. 아니면 관광객들한테 귀여움이라도 받을 예정이야~? 아직 30분은 남았을걸. 오늘은 생각보다 파도가 강해.” “으으읅. 응. 우웅.”

그까짓 것쯤 안다는 듯이 으스대는 고양이를 보며 픽 웃었다. 꼬질꼬질 뒷골목을 전전하던 녀석이 어느새 저리 됐나. 밥을 챙겨주는 버릇이 좋지 않단 지적을 받고 했지만, 리카르도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고양이 한 마리 밥 챙겨주는 사람이 이곳에 얼마나 많은데. 그깟 카페 사장에게 꼭 시비를 거리 못해 안달인 자들이란. 리카르도는 담배를 짓이기며 가버린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가는 길에 신의 가호가 있어 머리통이 깨져버리길 기도했다. 아. 이런 건 기도하는 게 아니었나? 무슨 상관이려나.

“으응, 응?” “오늘은 안돼~ 손님들 오는데 고양이 털 가득 묻히고 인사할까?”

아무리 고양이를 좋아해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법이다. 리카르도는 고양이 한 마리를 훌쩍 가게에서 쫓아냈다. 손을 씻고, 다시 한 번 머신 점검을 마치고, 얼음과 우유 재고를 확인하고,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또 해야 할 것들을 차근차근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고양이가 다녀갔던 입구를 물걸레로 몇 번이나 닦아냈다.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여러 곳으로 나 있는 창을 모두 연다, 공기 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털을 바람으로 털어낸다. 겸사겸사 환기도 시키고. 뭐. 솔직히 모래 먼지나 고양이 털이나. 리카르도는 솔직히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오. 소르디. 오늘은 손님이 좀 어땠니.”

“소피. 완전히 허탕이에요. 아침부터 머신이 고장 나서요.”

“이런. 아침부터 세이렌이 장난이라도 친 모양인가?”

“그래서 손님들을 가득 모아온 모양이에요.”

오후 2시 40분쯤. 관광객을 가득 싣고 항구로 들어오는 듯한 여객선의 모습을 상점가의 사람들이 바라본다. 리카르도는 크게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관광객 소음으로 가득해지는 걸 반가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솔직히 리카르도는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었지만, 공들여 내린 에스프레소 위로 물을 붓거나 얼음을 넣는 등의 비신사적인 일을 벌이는 관광객에 좀 질려있을 뿐이었다. 질겁하는 반응을 보이는 걸 원한다던 몇 달 전의 꼬마 하나를 떠올리니 더 짜증이 났다. 소피는 어렵지 않게 리카르도가 왜기분이 저조한지 단박에 맞추었다.

“평점 내려간 것보다 그 멍청이한테 한 소리 못한 게 아쉽구나.”

“정말로요. 소피.”

그가 얼마나 유명하든 리카르도는 별 관심도 없었다. 인터넷에 올린 몇 개의 게시글 덕에 가게 평판은 확 나빠졌다. 그깟 평점. 리카르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가게의 주인은 나였고 차별적인 태도를 보인 적도 없으니 꿀릴 것도 없지 않나.

“소피. 꽃가게 손님이 오는 것 같네요.”

“아. 제발. 이번에는 정석적인 꽃을 말하는 사람을 원해. 오렌지 꽃이요. 그 소리는 그만 듣고 싶어.”

“하하!”

오렌지 꽃. 영화에서 나온 대사 때문에 그놈의 본 적도 없는 오렌지 꽃을 찾는 손님들이 그렇게 많았다. 소피가 공들여 가꾼 아름다운 가게는 그 감독을 사랑에 빠뜨렸고,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기적적인 사랑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성지처럼 찾아오는 영화의 팬들에 소피는 처음의 기쁨보단 경멸이 서리기 시작했다. 재스민 한 다발이나 던져줘 버리지. 영화적인 허용이란 걸 모두가 알면서 꿋꿋하게 소피에게 오렌지 꽃을 주문하는 이들이란. 그녀는 계속 이랬다간 오렌지 묘목을 들이겠단 엄포까지 놨다나. 단순히 방문하기만 해도 소피는 크게 화내지 않았을 텐데.

‘어떤 꽃을 드릴까요, 신사분?’

‘오렌지 꽃이오. 그대가 나의 오렌지 꽃을 받아주길 간청하리다.’

오렌지 나무를 피우실 건가요?’

‘아니오. 그저 오렌지 꽃이오. 내가 안아볼 수 있는 마지막 꽃이 될 테니 그대에게 나의 꽃을 맡기고 싶소.’

웃기는 소리지. 리카르도는 그 대사 어디에 낭만을 느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일종의 언어유희였다. 꽃말 찾기 좋아하는 이들은 벌써 뜻을 이해하고 웃거나, 얼굴을 붉혔다는데. 리카르도는 모든 걸 알고 있으나 꼭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 남자에게 마음을 줄 여자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리카르도는 자신의 연애가 얼마나 글러먹었는지 안다.

“하여간.”

낭만 찾는 사람 중에 진짜 낭만적인 사람은 없다. 바에서 부러 마티니 한 잔을 시키거나, 모히또 한 잔을 시키는 놈들이랑 다를 게 뭐지? 리카르도는 커피를 내리고, 손님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에스프레소 한 잔. 크레마가 부드럽게 올라와 딱 마시기 좋은 그 순간. 책을 들고 들어왔던 손님은 커피를 받자마자 책을 젓고 부드러운 향을 음미한 뒤 크레마를 살짝 떠먹고, 천천히 저어 맛을 본다. 손에 들린 책은 분명 영화의 대본집이었다.

“영화가 대성하긴 했나.”

리카르도는 망할 거라며 낄낄댔던 감독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사람 일은 참 모를 일이다. 아내와 결별하고 여행지를 둘러보던 차라더니. 재결합 할 수 있으면 뭐 좋은 건가? 리카르도는 그 감독과 손님을 향한 관심을 뚝 끊었다. 아버지 귀에 들어가는 게 더 귀찮았다.

“에스프레소. 한 잔.”

“안 팔아요~

 

”리카르도는 장난스레 웃는다. 조금 앳된 얼굴의 남자가 웃는다. 동생은 꼭 가끔 들러 이리 장난스럽게 주문하곤 했다. 리카르도는 반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동생의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듯 쓰다듬는다. 오늘은 꼭 집에 같이 가고 시단 어리광 아닌 부탁을 하는 게, 생일을 챙기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신 모양이다. 반쯤 절연해 버린 아들 따위 잊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리카르도는 삐뚠 마음이 들었지만 고갤 끄덕였다. 오늘도 갈 생각이 없는 주제에 동생에게 오렌지 주스 한 병을 손에 감싸 쥐어 카페 밖으로 보냈다.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까지 버티고 있진 못할 테니까. 리카르도는 창을 더 넓게 열었다. 그리움의 냄새가 빠져나가도록, 미미한 화약 내음과 저 짠맛이 어우러지지 않도록. 이곳에 그저 커피 향만 남도록. 리카르도는 간절히 바랐다. 이제 머리가 더 굵어 아버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고 해도. 리카르도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리라.

바람이 분다. 모래 먼지가 손바닥에 묻어나온다. 발치로 다가오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본다. 리카르도는 대뜸 다가온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피우려던 담배 한 개비를 부러뜨려 버렸다.

“네 이름은 크림이라고 지어야겠어. 꼬질꼬질하게 다닐 거 같으니까~”

네가 언젠가 흰 고양이가 되면, 그때면. 그때까지만 더 너를 돌봐야지. 이 모래 먼지가 네 털에서 걷히고, 그 털에서 바다 내음이 빠지고 나면. 딱 그때는 너와 집으로 같이 돌아가 보려고. 새 가족도 들이니 딱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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