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ger

오늘도 맑음
햇빛은 쨍쨍, 바람은 선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오늘도 센터코어 파출소는 평화롭기만 하다.
“어제 당직 양심적으로 좀 살자.”
... 아닌가?
센터코어 파출소는 어제 당직이 엎지른 커피 덕에 소란스럽다. 리카르도 소르디는 퇴근 준비를 하는 스카를 뾰족하게 노려봤다. 왜냐하면 커피를 엎지른 주인공이 스카 오웬이기 때문이었다. 스카는 졸린 손으로 단추 구멍에 단추를 헛 끼우며 리카르도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그래서 내가 치우겠다고 했잖아.”
“얼씨구, 다른 것도 엎으시게~?”
허, 탄식을 내뱉은 스카는 잘못 끼운 단추를 풀렀다.
“너 잠 온게 내 눈에도 보이는데, 너한테 무슨 일을 맡겨~?”
“당직은 원래 잠 오는 거 알고 있잖아.”
“지난 이틀 내내 밤만 안 샜어도 잠이 덜 왔겠지....”
리카르도와 스카의 공방이 이어졌다. 이틀 밤을 지새운 스카 오웬과 푹 자고 출근한 리카르도 소르디. 승기는 당연히 리카르도에게 돌아갔다. 스카도 리카르도가 자신을 걱정하기에 한 말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툴툴대면서도 리카르도에게 별 다른 말을 더 얹지 않았다.
스카가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리카르도가 걸레를 빨고 있자니 조나단도 파출소로 출근을 했다.
“왔냐.”
“이제 퇴근해?”
“어. 졸려 죽을 거 같어.”
“그렇다고 얼굴에 적혀있네.”
자리에 앉은 조나단의 일과 시작은 오늘 근무자를 확인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전원을 누르고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놓은 이번달 근무표를 확인했다. 15일, 오늘의 근무자는 저와 리카르도, 아미, 그리고 소장님이었다. 조나단은 걸레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리카르도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에 리카르도도 손을 흔들어줬다.
리카르도는 파출소 밖으로 나가 걸레를 밖에 세워뒀다. 소장님이 대걸레는 빨고 가급적 밖에 내다 말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특히 날씨가 좋은 날엔 제발. 리카르도는 대걸레가 옷도 아닌데 굳이 그래야하나, 라는 생각을 종종했다. 그래봤자 어차피 대걸레 아닌가. 그래도 상사가 까라면 까야하는 법. 햇빛이 잘 드는 뒤뜰에 대걸레를 거꾸로 세워두고 다시 파출소로 돌아오니 아미가 출근해 있었다.
“릭! 어서왕!”
“아미~.”
“이제 출근한 거야?”
“대걸레~.”
“아항.”
아미와도 가벼운 인사를 나눈 리카르도는 출근한지 15분만에 드디어 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오늘의 일과를 시작... 하기 전에.
“다들 좋은 아침이야.”
“좋은 아침입니다.”
“오셨습니까?”
“좋은 아침!”
출근을 하신 소장님께 인사를 드렸다. 드디어, 진짜 일과의 시작이었다.
일과는 지난 밤에 들어온 민원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구역별로 민원을 나누고, 나가서 해결할 수 있는 민원과, 그렇지 않은 민원으로 한 번 더 분류한다. 메일도 확인하고, 쓰다 만 보고서 작성도 대충 정리하다 보면 오전 회의 시간이 다가온다. 회의실은 2층 휴게실 옆에 있으나, 브리핑으로 끝날 경우엔 그냥 그 자리에서 육성으로 회의가 시작된다. 오늘의 회의 장소는 1층. 소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당장 확인해야할 민원은 2개. 급한 건 아니야. 코어1동에 철물점, 코어2동에 화원으로 가면 돼. 철물점은 셔터 낙서. 이거는 가서 꼭 확인해주고, 화원은 앞에 보도블럭이... 음, 이건 시청으로 가야할텐데. 일단 조나단과 리카르도가 오전순찰 돌면서 철물점도 다녀와줄래?"
아미는 이거 시청쪽으로 돌려주고.
소장님의 끝말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운전?”
“네가 해.”
“이따가 커피 사~.”
“맥심이나 타 먹어.”
“너나 많이 먹든가....”
티격태격하면서 순마에 탄 둘. 운전은 리카르도가 맡게 됐다. 평소 같았으면 걸어갔을 테지만 오늘은 철물점에 다녀와야 하니 이용하게 됐다. 시동을 걸고 라디오를 켜니 흘러나오는 보사노바. 디제이의 선곡이 산뜻했다. 리카르도가 운전을 하는 동안 조나단은 창밖을 살폈다.
“뭐 있어~?”
“아직은 없어.”
아직은 뭐가 없다는 말에 고개만 까딱까딱. 그러다가 조나단이 운을 떼자 귀를 기울였다.
“여기 칼국수집 앞에 불법주차 단속해야 해.”
“니가 하러 와....”
“아미 시킬 거야.”
“니가 잘 알면 니가 해야지 왜 아미한테 떠넘겨~?”
... 아미가 말을 잘 해. 얼씨구. 쓸데없는 말다툼을 하다보니 어느새 코어1동. 철물점 사장님은 이제 막 셔터를 올리는 중이었다. 리카르도는 철물점 앞에 차를 댔다. 사장님은 경찰차를 보더니 셔터를 후다닥 내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리카르도와 조나단이 인사를 하며 철물점 앞으로 걸어갔다. 사장님은 같이 인사를 해주더니 둘에게 셔터를 보여주었다.
“이게, 낙서가 저희 셔터에도 되어 있더라구요. 어제 저녁에 문 닫을 때까진 없었는데, 집에 오던 아들놈이 얘기를 해줘서 알았습니다.”
“어제 몇 시에 마감하셨습니까?”
“화요일은 8시에 문을 닫습죠. 아들에게 연락이 온 건 10시 반 경이구요.”
“여기 CCTV는 작동하는 건가요?”
노트에 증거를 적으며 주위를 둘러보던 리카르도가 가게 위에 CCTV를 가리켰다.
“네! 작동합니다!”
“그럼 여기 CCTV 파일을....”
“리카르도.”
조나단이 가게에 들어가려던 리카르도를 제지했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셔터에 그려져 있는 그림 중 일부분을 손으로 짚었다.
“이거, 그 놈 짓이네.”
그 놈이라 하면 그 놈이다. 그 놈은 상습낙서범을 말했다.
조나단이 손으로 짚은 부분엔 불법 낙서 상습범의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에이씨, 리카르도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장님, 이거 범인을 바로 잡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범인을 바로 못 잡는다니.... CCTV 확인하면 다 잡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사장님 가게 셔터에 낙서한 놈이 상습범인데 잡기가 쉽지 않아서 말이죠.... 저희도 빨리 잡고는 싶은데 녀석이 워낙 신출귀몰해서....”
사장님은 망연자실해 하며 셔터의 낙서를 한 번 더 쳐다보았다. 그리곤 한숨을 푹 쉬었다.
“빨리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습니까?”
“범인의 동태를 파악하고는 있습니다만....”
리카르도가 말꼬리를 흐렸다. 사장님의 표정이 흐려졌다.
"가게 CCTV를 확인하면 뭐가 더 나올 수도 있습니다."
조나단이 말했다. 조나단은 CCTV 파일을 내려받는 동안 철물점 가게 사장에게 낙서를 지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사장님은 조나단의 말을 경청하더니 범인에게 손해배상을 엄청나게 청구할 거라며 씩씩댔다.
"일단 저희도 CCTV 확인해보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들어가세요."
다시 경찰차에 올라탄 둘은 일단 서로 돌아가기로 했다. 파일을 아미에게 넘겨주고 순찰을 도는 것이 더 낫겠다는 의견이 합치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운전대를 잡은 건 조나단이었다. 리카르도는 덕에 편하게 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 커피."
"이따 순찰 돌면서 사 먹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생각난 커피 생각. 조나단은 리카르도에게 핀잔을 주며 서로 들어갔다. 리카르도는 순마에 기대 조나단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USB를 건네주는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만 시간이 걸리는 조나단에 리카르도는 이럴 줄 알았다면 담배나 한 대 태웠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기도 잠시, 누가 서로 걸어왔다. 차에 기댄 몸을 일으켜 세운 리카르도는 파출소로 걸어오는 인영에게 말을 걸었다.
"아침에 퇴근하지 않으셨습니까...?"
"쟤네 짐 챙기러."
다크써클이 잔뜩 내려온 최윤은 피곤해 죽겠다는 얼굴로 짐을 들어보였다. 최윤은 오직 소장인 이예현과 동생인 최아미를 챙기기 위해 퇴근을 했음에도 다시 서로 돌아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리카르도는 최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윤은 저를 이해 못하는 리카르도에게 수고하라는 말과 동시에 서로 들어갔다. 활짝 열어둔 문 안에서 어, 오빠다! 라고 소리치는 아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따라나오는 것은 조나단. 리카르도는 조나단한테 뭘 하느라 늦었냐고 핀잔을 줬다.
"아미가 자기 USB가 사라졌대서 내 자리도 한 번 확인하고 나오느라."
"그거 경위님이 가지고 오셨지...?"
그에 고개를 끄덕. 리카르도는 그럴 줄 알았다며 헛웃음을 날렸다.
"시간은 얘기해주고 왔어?"
"8시부터 찾으라고 하고 왔어."
철물점 얘기를 하며 순찰을 시작한 둘. 불법 주차 단속이 많은 곳부터 금연 구역,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골목까지 누볐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려서 드디어 커피를 샀다. 카페인을 잔뜩 느끼며 파출소로 돌아오니 아미는 키득키득 웃고 있고 소장님은 곤란하게 웃고 있는 얼굴로 타이핑을 치고 있었다. 뭡니까? 물어보니 아미가 답변을 해줬다. 누가 신고를 넣었는데 공원에 공롱뼈가 있는 것 같다고.
"공룡뼈가 여기 왜 있어~."
"푸하핫! 몰랑! 그래서 둘이 오면 같이 찾으러 가보기로 했엉!"
"어디 공원인데...?"
"어디겠엉."
"지금 가는 건가?"
조나단도 궁금하지! 지금 가보자! 아미가 명랑하게 소리치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리카르도는 들고 온 아미의 프라푸치노를 책상 위에 놔두고 소장에게도 커피를 드렸다. 아메리카노 맞으시죠....? 응 소르디, 고마워. 아, 공원에 뼈 보고 오는 김에 칼국수 집 앞에 불법 주차 단속하고 거기 칼국수 포장해올래? 점심은 여기서 먹자. 네~. 답변을 한 리카르도는 밖으로 나오자 조나단의 커피를 뺏어먹는 아미를 봤다. 아미 네 프라푸치노 자리 위에 올려놨는데, 가져올거야? 내 프라푸치노! 아미가 쏜살같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리카르도가 크큭 웃으며 조나단한테 걸어갔다.
"진짜 공룡뼈일 거 같아~?"
"아니. 뼈가 있으면 치워야지. 애들이나 개들이 먹으면 어쩌려고."
"오~ 경찰관님~."
"오버하지 마."
"그래...."
내 프라푸치노! 아미가 파출소밖으로 명랑하게 뛰어나왔다. 그럼 가자! 공룡뼈 찾으러! 큰 외침과 동시에 공원으로 걸어갔다.
아, 소장님이 뼈 찾고 오는 길에 칼국수집 불법 단속하고 칼국수도 사오래. 헐~ 나 닭칼국수 먹어야지. 조나단은 뭐 먹을 거야? .... 나도 닭 먹을까. 좋아! 릭은? 난 바지락~. 점심메뉴를 고민하며 걸으니 공원도 금방 도착했다. 잔디밭이 깔린 공원 중 어디에 공룡 뼈가 있을 것인가. 셋은 구역을 나눠서 뼈를 찾기로 했다. 리카르도는 왼쪽으로 갔다. 나무가 많은 공원의 왼쪽. 고작 뼈 하나 찾겠다고 고개를 땅에 처박고 걸었다. 만약 진짜 공룡 뼈가 발견된다면 고작 뼈가 아니게 되는 거였지만 공룡 뼈가 진짜 있겠는가. 리카르도는 민원을 넣은 사람이나, 여기서 이렇게 뼈를 찾고 있는 자신이나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땅을 봤다. 땅만 보기를 몇분, 리카르도는 뻐근해진 목을 돌렸다. 올려다 본 하늘은 맑았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도 시렸다. 지저귀는 새소리, 근처에서 흐르는 강의 물소리.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리였다. 한적한 소리를 들으며 땅바닥을 대충 살피니, 아미의 큰 소리가 들렸다. 아!! 뭐야 이게!!!!! 거봐, 공룡 뼈 아니라니까. 리카르도는 아미가 소리친 방향으로 느긋하게 걸어갔다. 도착한 곳에는 머리를 쥐어잡고 있는 아미와 뼈를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조나단이 있었다. 리카르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그래서 무슨 뼈였는데~? 질문에 웃음기가 잔뜩 서려있었다. 아미가 화를 내며 말했다. 족발뼈! 이게 무슨 공룡뼈야!! 아아악!! 용서 안해.......... 아미의 악받친 소리가 공원에 울려퍼졌다.
화난 채 도착한 칼국수집 앞. 아미는 불법 주차 딱지를 붙이며 중얼거렸다.
"족발도 안 먹어본 인간같으니.... 어떻게 족발 뼈랑 공룡 뼈랑 헷갈려? 윤 오빠한테 얘기해줄거야. 이렇게 바보같은 사람도 있다구."
"알았어 진정해.... 아미, 소장님은 뭐로 사갈까?"
"오빠도 바지락으로."
"그래.... 조나단 너도 가서 아미랑 딱지 좀 붙여.... 내가 주문하고 올테니까~."
조나단이 리카르도를 잠시 노려보더니 터덜터덜 불법 주차 차량 앞으로 갔다. 딱지 붙이다가 차주랑 입씨름하기 싫어서 본인이 칼국수 포장을 하고 싶었으나 선수를 뺏긴 탓에 힘없이 딱지를 뗄 수밖에 없었다. 리카르도는 딱지를 붙이는 조나단을 보며 웃다가 칼국수집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인사를 하자 저에게 꽂히는 눈들이 수두룩. 몇명은 침을 꼴깍 삼켰고 몇명은 가게 밖의 주차해놓은 차들을 봤다. 가게 주인은 태연하게 다가와 말했다.
"지금 자리 없어요."
"포장은 되나요~?"
둘의 대화를 들은 손님들은 힐끔힐끔 쳐다보던 것을 멈추고 다시 식사에 들어갔다. 비리라든가, 횡령이라든가, 기대하는 것들이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치만 나오는 말이 포장되냐니. 어떤 컨텐츠를 기대했던 손님들은 실망을 했다. 불법주차차주들은 여전히 리카르도의 눈치를 살피며 문밖을 열심히 힐끔댔지만.
파출소로 돌아온 후, 점심까지 먹은 파출소는 느긋하기만 하다. 리카르도는 셔터 낙서범을 잡기 위해 CCTV 영상을 돌려보고, 아미랑 조나단은 오후 순찰을 나갔다. 느긋한 오후, 말 걸지 않는 소장님, 들어오지 않는 민원. 모든 게 완벽했다. 리카르도는 편안한 시간처럼 여유롭게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 내용마저 느긋했다. 들어온 민원 내용을 정리하면 되는 것이었다. 오늘 민원은 셔터 낙서범 CCTV 돌려보기와 족발뼈 찾기로 종료. 그 중 가장 편했던 건 족발뼈 찾기. 오전 10시 50분 경 센터코어 1동과 2동 사이에 위치한 코어 중앙 공원에 공룡뼈가 있다는 민원을 접수, 현장 서 조사한 결과 누가 먹다 버린 족발 뼈로 확인 됨. 이리도 간단명료하고 짧은 보고서가 아닐 수 없었다.
리카르도는 보고서를 다 작성한 후 짧게 기지개를 편 후 다시 CCTV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낙서범 신고가 이틀에 한 번 꼴로 들어오고 있으니 이 놈을 빨리 잡긴 해야했다. 안경을 고쳐 쓴 후 영상을 틀고 열심히 10초 건너뛰기를 눌렀다. 건너뛰기 버튼을 꾹 누르고 있자니, 영상 속에서 좌우를 살펴보곤 락카 스프레이로 낙서를 한 후 왼쪽으로 뛰어가는 그 놈의 모습이 찍혔다. 리카르도는 그 모습을 캡쳐한 후 인근 CCTV의 영상을 돌려봤다. 도망친 시간대를 살펴보니 CCTV 이곳저곳에서 모습이 나타났다. 다시 흔적을 따라 추적하니 금세 사각지대를 노려 사라졌다. 여기서부턴 CCTV에도 녹화되지 않았다. CCTV의 위치를 잘 아는 놈이었다. 열심히 영상을 봤더니만, 일은 공쳐버렸다. 리카르도는 답답한 마음에 건물을 나와 뒤뜰로 갔다.
파출소의 합법적 흡연구역, 뒤뜰. 리카르도도 여기서 담배를 태웠다. 최경위님이 소장님께 허락받아 배치한 은색 재떨이 통이 파출소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아도 어쩌나. 경찰들에게도 스트레스 해소는 필요하니. 리카르도도 조용히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최대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눈알과 뇌를 혹사시켰으니 비워낼 시간이 간절했다. 한 모금, 두 모금 연기를 뱉어냈다. 연기와 같이 생각도 뱉어냈다. 아, 이런 적 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리카르도는 경찰대에 입학했을 적을 기억했다.
수석 입학. 어릴 적 저를 들뜨게 했던 말이었다. 그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기살기로 노력했고, 수석 입학이라는 말은 그 노력의 보상이라 여겼었다. 아직도 그 때가 선연하다. 수석이 뭐라고. 고작 노력이 뭐라고. 어린 나이에 맛 본 성과는 달콤했고, 그 달콤함은 판단력을 흐렸다. 평소와 같이 담배를 물고 있던 날. 근처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별 영양가는 없었지만 시간은 잘 갔다. 대화에 흥미가 생긴 건 이름이 나온 후였다. 나에 대해선 무슨 말을 할 지. 한 개비 더 꺼내물며 조소를 지었다. 나오는 말들은 표정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부정, 비리, 뇌물, 수석, 그리고 입학. 거지같은 소르디. 썩어빠진 소르디. 역겨운 소르디. 너는 또 기어코 나를 죽이는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왔다고 생각한 곳도 결국 진창이었다.
아. 씹, 시발.... 이런 생각을 하려던 게 아니었어....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머리를 비우려던 시간은 머리를 터지게 했다. 다 거지같아..... 주저앉아 머리를 헤집었다. 그 짧은 시간에 생각은 많이도 했다. 몇년 전 일부터 집안까지. 생각 좀 안하려고 나왔더니 생각을 하기 바빴다. 뇌가 느리게 회전했다.
괜히 기분만 잡치고. 다시 건물로 들어왔다. 곧이어 순찰을 나갔던 아미와 조나단도 들어왔다. 아미는 화창한 햇빛이 너무 더웠다며 축 늘어졌다. 말 없는 두 명과 저기압인 두 사람. 파출소의 분위기가 칙칙해졌다. 평소와 달리 어두워진 분위기를 눈치챈 소장이 입을 열었다. 카페에서 디저트라도 사와서 먹을까? 그 소리에 아미 눈이 번쩍. 조나단 귀가 쫑긋. 디저트 소리에 기운을 차린 아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스콘!!!!! 스콘 먹고 싶어요!!!"
"그래, 아미는 스콘, 조나단은?"
조나단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말차 휘낭시에가 좋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리카르도. 세 쌍의 눈이 리카르도한테 향했다. 리카르도는 눈을 굴려 생각하는 척했다.
"땡기는게 없는데... 그럼 난 바움쿠헨으로~. "
좋아! 아미가 자리에서 뛰었다. 소장님은 지갑을 챙겨 일어났다. 둘은 쉬어, 소르디랑 둘이 다녀올게. 끝말에 리카르도는 고개를 돌려 소장을 봤다. 소장님과 둘이? 아직 둘만 있는 것도 아닌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리카르도는 잽싸게 말을 꺼냈다. 소장님, 그냥 저 혼자....
끼익.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파출소의 문이 열렸다. 넷의 고개가 문으로 돌아갔다. 문이 열렸으나 인영이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니 그제야 문을 연 사람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끽해봤자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애들 셋이었다. 아미가 아이들이 겁먹지 않도록 다가가서 물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왔어요?"
그러자 한 아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신고하고 싶어서요오...."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큽, 아미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아이들을 소파로 데려갔다. 리카르도는 냉장고에 있던 오렌지 주스를 꺼내 애들에게 한잔씩 돌렸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소파 위에서 발을 대롱거리던 아이들은 주스를 들이켰다. 당이 들어가니 긴장이 풀렸는지, 아까 말을 꺼냈던 아이가 다시 말을 꺼냈다.
"제가아... 용돈을 모아서요.... 얘네랑 같이 머그려고오.... 떡볶이를 샀는데에......."
말하는 입술도 삐죽, 눈물도 삐죽. 눈물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파출소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했다. 발언자가 울먹이자 옆에 친구가 소리쳤다.
"힐데베르트! 울지 마!"
"그래, 힐데! 울지 말구 얘기해!"
"허어어엉...."
울지 말라는 소리에 기어코 눈물을 줄줄. 이 시점부터 아미는 뒤돌아 소리없이 깔깔 웃었다. 조나단도 입술을 깍 깨물었고, 이예현도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리카르도는 비실비실 웃으며 힐데베르트에게 휴지를 줬다. 그래, 울지 말고~. 아저씨한테 천천히 얘기해봐~.
휴지로 눈물을 닦은 힐데베르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어... 일단 저가 컵떠뽀끼를 샀는데에.... 뒤에서 어떤 아죠씨가요오...."
말하다가 다시 울컥. 힐데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얘기했다.
"저가... 떠뿌끼 받자마자 저를 막, 치고 지나가서.... 카일 먼저 줄 떡볶이를 흘렸는데...."
"근데요 얘가요 손에 돈도 들고 있었어요. 근데 아저씨가요, 힐데가 떡볶이 받고요 돈 내면서 쳐서요 돈도 떨어트렸어요. 그 아저씨 때문에 저희 떡볶이도 못 먹고.... 얘는.... 돈도... 잃어버리구......."
옆에서 대신 말해주던 친구도 같이 슬퍼졌는지 말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아! 울지 말라구! 레이 너도 울지 마!! 그래서 신고하러 왔자나!!"
셋 중 울지 않던 흑발 아이가 소리쳤다.
"경찰 아저씨, 얘가 저희 떡볶이 사주다가 어떤 아저씨가 쟤 쳐서 떡볶이도 흘리고 돈도 날라갔는데 그 아저씨는 그냥 에구, 흘렸네. 이러고 갔어요. 그 아저씨 신고할게요!"
파출소의 모든 인원이 호흡곤란이 되었다.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나마 애들 앞이라 정신줄을 잡고 있던 리카르도가 웃던 걸 간심히 참고 빈 종이에 신고 내용을 적었다.
"그래~. 떡볶이 먹으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와서 쳐서 떡볶이도 못 먹고 돈도 날렸다.... 신고자 이름은 어떻게 해줄까~?"
"힐데, 레이, 카일로 해주세요."
"힐데, 레이, 카일.... 다 됐어~. 아저씨랑 같이 현장 가서 그 아저씨 같이 잡자. 그만 울고~."
울던 힐데랑 레이는 카일이 테이블에서 봑봑 뽑은 휴지로 눈물을 닦고 소파에서 내려왔다. 리카르도는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문제의 그 장소로 향했다.
작은 떡볶이집. 여기서 아이들은 현장을 재현해줬다. 리카르도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아이들이 돈을 놓쳤을 때 돈이 날아갔을 법한 장소도 살펴봤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풀떼기와 쓰레기 뿐. 날려버린 돈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 수록 아이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리카르도는 울상이 되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 큰 성인이 작은 애들이나 치고 다니고.... 깊은 한숨에 아이들은 리카르도의 눈치를 봤다. 그런 행동을 본 리카르도는 몸을 쭈그려 아이들과 시선을 맞췄다.
"얘들아~ 돈을 찾기는 어려울 거 같은데...."
"... 훌쩍."
"대신 아저씨가 사줄게~."
"네?"
"... 엄마가 모르는 어른이 사주는 거 먹지 말랬는데...."
"경찰아저씨 모르는 어른 아닌데...."
"그래두 되나...."
떡볶이를 대신 사주겠다는 리카르도에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리카르도는 헛웃음을 짓곤 컵떡볶이 세개를 주문했다. 아이들은 쭈뼛쭈뼛 컵떡볶이를 받곤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아."
"잘 먹겠습니다아."
"나중에 보답할게요."
"어떻게~?"
"... 저도 경찰돼서 아저씨 떡볶이 사드릴게요."
"하하! 그래~."
그때 레이라는 애가 한 행인을 가리켰다.
"아까 저 아저씨 아녔어?"
"... 어! 그렇네!!! 맞어!! 아저씨 저 아저씨예요!!"
"어디? 저기 가방 들고 모자 쓴 아저씨?"
"네!! 빨리 가서 잡아주세요!!!!"
"알았어~ 아저씨가 가서 잡아줄게.... 다들 집에 조심히 들어가~."
말 끝나기 무섭게 리카르도는 성큼성큼 행인의 뒤를 쫓았다. 쫓으면 쫓을 수록,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행인의 뒷모습이 유난히 익숙했다. 금세 남자의 코앞까지 온 리카르도. 실례하겠습니다.... 어깨를 두드리니 고개를 휙 돌아보는 남성.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런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냄새. 틀림없는 락카의 냄새였다. 이 남자가 그 놈이었다. 상습낙서범.
"맞죠?"
"무, 무슨 소리인지...."
"최근 이 구역 셔터나 담벼락에 낙서하고 다니는 거 그쪽 맞잖습니까.... 아, 드디어 잡았네."
꼬리가 길면 잡힌다더니, 동네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을 줄이야. 게다가 애들까지 툭툭 치고 다니고. 리카르도는 골치 아픈 일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서로 갑시다.... 낙서범에게 말했다. 낙서범은 자리에서 주춤하는 듯하더니 몸을 틀어 반대방향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 새끼 시발.... 욕을 읊조린 리카르도는 곧장 낙서범을 따라 뛰었다. 그래도 그간 안잡히려고 용을 깨나 썼던 모양인지 낙서범은 요리조리 골목을 이용해 달렸다. CCTV의 사각지대까지 아는 놈 다웠다. 리카르도는 무전기를 꺼내들어 연락을 넣었다.
- 코어1동에서 상습 낙서범 도주 중. 골목 이용해서 도주 중이라 도주로 차단 필요. 현재 가로수 사거리 방향.
연락을 받은 아미와 조나단도 바로 골목을 향해 뜀박질했다.
무슨 골목이 이렇게나 조잡하게 많은 건지! 골목은 끝도 없었고, 낙서범은 큰 길로 나가는 듯 하다가도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건물의 틈 사이, 자재가 가득한 좁은 골목, 일직선으로 갈 수 없는 길까지. 욕을 하지 않을래야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놈은 멀쩡한 길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힘이 빠졌을 터인데도 낙서범은 계속 도주했다. 잡범이라지만 도주를 왜이렇게 하는 거야? 이쯤되니 달리면서도 회의감이 들었다. 어차피 얼마 안 가 다시 잡힐 거 같은데. 지금 힘을 빼는 게 좋을까.
- 릭! 어디야!!
무전기로 소리가 들렸다. 번뜩 정신을 차렸다. 미쳤지. 리카르도는 무전기를 들었다.
-에이프릴가 3번지 쪽으로 도주 중. 메이 쪽 막아줘. 에이프릴쪽으로 몰테니까. 한 명은 마치에서 대기 부탁.
무전기를 집어넣고 다시 달렸다. 잡겠다는 일념 하에. 주변에 늘어져있는 박스 더미를 낚아챘다. 그리곤 세갈래로 갈라지는 골목 중 한 곳으로 던졌다. 무전으로 통신한 곳이었다. 메이가로 향하는 골목이 막혔다. 낙서범은 뒤에서 날아오는 박스 더미에 놀라 앞으로 계속 직진했다.
- 에이프릴로 가는 중! 막아!
포획망 안에 들어왔다. 하아. 뜀박질의 속도를 늦췄다. 앞에는 아미와 조나단 둘 중 하나가 서 있을 것이고, 뒤에는 내가있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다 잡은 쥐였다.
낙서범은 발걸음을 늦추는 리카르도를 보고 승리의 웃음을 지으며 골목의 밖으로 뛰어갔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잠시, 낙서범은 수갑을 들고 있는 아미를 마주쳤다. 아미는 낙서범을 향해 씨익 웃더니 잽싸게 손목을 잡아 수갑을 채웠다.
"체포 완료!"
"본인이 뭘 잘못했는진 아시겠죠."
조나단이 순마를 끌고 나타났다. 아미는 고개를 푹 숙인 낙서범을 뒷자리에 밀어넣었다.
"잡았다! 잡았어! 우리가 잡았어!!"
아미가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조나단은 차에서 내려 느긋히 걸어오는 리카르도를 기다렸다. 골목에서 리카르도가 걸어나왔다. 손을 흔들어보인 리카르도는 뒷좌석에 박혀있는 낙서범을 응시했다. 그리곤 한숨을 푹. 잡았네~. 응! 잡았어! 이로써 센터코어 파출소가 관리하는 코어1동과 2동에 잠시나마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됐다.
낙서범을 데리고 서로 돌아왔다. 서에서는 낙서범을 어떻게 처리할 지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이대로 피해자들 상대로 민사 넘기면 종료. 리카르도는 자리로 돌아가 작성하던 보고서를 마무리 짓기 시작했다.
철물점 셔터에 락카로 불법 낙서가 되어 있었음. 범인은 CCTV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범죄현장에서 도주했으나 다음 날 코어1동에서 체포.
완벽한 마무리였다.
보고서를 올리고 소파에 앉아 조나단과 아미의 쓸데없는 담소에 끼었다. 주제는 아이들 사랑이었다.
릭은 애기들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애.
내가~?
맞잖아, 애들만 보면 잘해주려 하고.
내가~? 오버들 하지 마....
뭐야뭐야, 그럼 아까 애기들한테 떡볶이는 왜 사줬엉??
... 애들이잖아~.
봐! 릭은 애기들 좋아한다니까??
옆에서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끄덕.
아니래도....
우당탕탕 파출소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