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합작.png

"이리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아시는가~...?"

 

한 남자가 길을 묻고 있었다. 어두운 옥빛 옷을 입고 갓을 쓴 사내였다. 꽤나 훤칠하게 생긴 외양에 마을 아낙들이 볼을 붉히며 아는 대로 길이며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남자의 특이한 점은 허리춤에 노리개 대신 호리병 두 개를 달고 있다는 점이었다. 리카르도 소르디는 영안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그를 남들과 다르게 만든 요인이었다. 하나 안타까운 점은 영안은 타고 났지만 신력이니, 영력이니 하는 것은 타고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귀(鬼)를 볼 수 있는데 붙어오는 걸 떼어낼 수는 없는 것은 어릴 적의 그에게 무척 고역이었다. 감각은 날로 예리해지고, 심성은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그 덕에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더랬다. 그의 부모님은 귀신을 본다는 장남을 걱정해 리카르도가 여덟 살이 되던 해, 무당에게 데리고 갔었다. 그리고 이상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역마살이야. 그것도 아주 지독해."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부모님은 믿지 않았었다. 그들의 아들은 활동적이기 보단 조용했고, 낯선 곳에 나다니는 것조차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당은 불신 가득한 표정에도 개의치 않고 저 할 말을 계속해서 해댔다.

"지금 당장 사는 곳을 떠나라. 얼마 남지 않았어. 당장 떠나야 해."

사는 곳을 떠나라니, 고향을 떠나라니.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가솔들은 어쩔 것이며 간다고 해도 어딜 가겠는가. 아이가 귀신을 본다는 말에는 그건 하등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만 하더니 생뚱맞은 소리만 하는 무당을 리카르도의 부모님은 믿을 수 없었다. 

후에 리카르도는 말했다. 아주 용한 무당이었다고.

그는 허리춤에 2개의 호리병을 매달고 다녔다. 호리병 하나에는 검게 그을린 나무조각이, 다른 하나에는 녹슬어 버린 칼날의 일부가 들어있었다. 나무조각은 화변(火變)이 있던 마을의 장승으로, 그 마을은 리카르도가 도착했을 때쯤에는 이미 잿가루만이 남아있었다. 제 짝도 없이 혼자만 남은 장승을 세워주자 자신을 데려가라며 시끄럽게 굴어 함께 하게 되었다.

"너는 장승이 마을에 안 붙어 있어도 돼~..?"

어느날 물은 질문에 그 꺼먼놈은 '새로 시작하는 마을에는 새 장승이 들어서야지. 원래 있던 거 쓰면 귀신 붙어.' 이렇게 말했다. 지금 본인이 본인보고 귀신이라고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었다. 칼날은 제 주인을 지키지 못한 무사의 칼이었다. 자신의 주인, 호위대상, 정인. 한 단어로 정의 내리지 못할 누군가를 지키지 못한 무사는 슬픔과 자책으로 자결했고 제 주인이었던 무사를 찌른 칼은 그대로 부숴졌다. 한동안 그 깊은 슬픔을 먹고 자란 칼날은 결국 불가사리*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다.  *불가사리: 한국 전설에 등장하는 쇠를 먹는 동물을 말한다.

 

 

"너, 뭘 주워온 거야~?"

"이래 보여도 애는 착해. 릭, 우리가 데려가자."

"미쳤어? 너로도 벅차···."

 

 

리카르도가 호리병을 두개 가지고 다니게 된 이야기이기도 하고.

소르디 가문의 적장자는, 유일한 생존자는 이제 영물을 찾고 있었다. 겨우 잡신 따위가 아니라, 정말 제 살(煞)을 끝내줄 영물을. 제 가족을 모조리 죽인 이 원망스로운 살을 끝내든, 아니면 자신이 죽든. 둘 중 하나는 해야한다. 언제부턴가 리카르도의 영혼을 가득 채운 다짐이었다. 바다의 신이 산다는 바닷가, 명산의 산군, 기린이 산다는 마을. 소문이 들려오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물론 소문은 늘 사실과 달라서 실제로는 인재인 경우나, 이미 사라진 영물의 흔적만을 발견할 뿐이었다. 이번 목적지는 서쪽 끝의 한 마을이었다. 최근 살인사건과 실종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곳. 이것은 아주 좋은 징조다. 다친 영물이 보이는대로 사람을 잡아먹으며 몸을 회복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렇게 도착한 마을 어귀에서 길을 묻던 참이었다.

"선비신가? 그 마을은 요새 흉흉해서 갈 곳이 못 되우."

"아~... 그쪽에 볼일이 있어 내 꼭 가야 하네만."

"저짝 고갯길 하나만 넘으면 되긴 하는데... 반나절이면 갑니다."

"이건 길을 알려준 삯이네~.."

 

말하길 꺼려하던 이는 삯을 받고는 환하게 웃으며 고갯길의 입구까지 안내해주었다.

"이번에도 공치는 거 아니겠지···."

"어쩌면 그냥 연쇄살인마일 수도."

"이런 시골 마을에 뭐가 있겠나."

 

혼잣말이었는데 따라붙는 말들이 많기도 했다. 조용히 하란 의미로 호리병을 툭툭 치니 금새 목소리들이... 조용해지긴 커녕 불만을 터뜨렸다.

 

"야, 호리병 좀 그만 쳐. 머리 울린다고.

"리카르도, 쇠붙이를 더 줬으면 한다."

"너 맨날 귀찮을 때마다 치지?"

"쇠붙이를 더 줘라."

"아, 이것들아 좀 조용히 해...~! 조나단 너는 쇠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씌었나..."

"니네 밥값이 얼마나 드는 줄 알아~...?"

"그렇다고 그렇게 객식구 취급하면 있던 복도 달아난다, 너?"

"쇠붙이는 더 없나."

리카르도는 호리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이라도 버리고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 진상들도 방방곡곡을 함께 다니다 보니 정이 든 건지. 끝나지 않는 여행길이 적적하진 않았다.

이번에도 허탕을 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은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사라졌다. 대체 저 마을에 뭐가 있는거지? 따위의 생각이 절로 났다. 나름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이런 형용하기 힘든 영험한 기운은 처음이었다. 이런 건 인생에서도 처음이었다.

들뜸과 두려움을 안고 들어간 마을은 예상외로 평범했다. 갈 곳이 못된다는 말과 다르게 오리혀 사람들의 표정은 좋아보였다. 정말 살인사건이 수시로 일어나는 동네가 맞나? 아직 초저녁이라 시장바닥에서 정보를 더 캐내려 마음 먹었을때, 한 남자가 곁을 스쳐갔다. 호리병들이 동시에 울렸다.

"산군이다."

"산군이군."

산군? 산군이면 호랑이라는 소리다. 물론 방금 지나간 건 엄연히 사람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티도 안 날 정도로 완벽한 둔갑술을 할 정도의 산군이 어째서 자신의 산이 아닌 이런 길바닥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갔다. 살인과 실종은 저것과 관련이 있겠구나.

하지만 모든 의문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멀쩡히, 그것도 인간태로 돌아다닐 정도라면 왜 굳이 사람을 해치고 다니는 건지. 영물이라도 함부로 사람을 해한다면 자신에게 그 화가 돌아온다.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는 것 보다 저 산군을 따라가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아 조용히 뒤를 밟았다.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원래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호랑이를 따라가며 느낀 것은 제대로 찾은 것 같다는 직감이었다. 점점 더 신비로운 기운이 뻗쳐오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이 기운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산군은 어느 한 기와집으로 들어갔다. 딱 봐도 구조가 복잡할 것 같은, 거대한 집이었다. 확실히 이 집 안에 영험한 무엇인가가 있고, 산군을 그걸 잡아뒀든 숨겨줬든 둘 중 하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릭, 여기 들어가게?"

"...들어가야만 한다면, 들어가야겠지~..."

산군와 영험한 기운이 어디에 정착해 있는지 알면 되었다. 일단 시간이 늦어 근처 주막에 방을 잡았다. 어두운 밤, 등불마저 끈 후에 호리병 속 이들을 현현시켰다. 호리병을 탈출한 놈들은 서로 눈을 맞추더니 하나둘 이야기를 꺼낸다. 저들도 나름대로 생각을 해본 모양이었다.

 

"릭, 놀라지 말고 들어. 우리 생각에는... 용이 있는 것 같거든?"

"...용?"

이건 생각한 것보다 대물이었다. 용, 신성한 존재, 하늘 위에서나 존재하는 옥황상제의 하수인. 한 번 승천한 용은 별다른 일이 있지 않는 이상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저 기와집에 용이 있다니.

"어째서 용이 산군이랑 있는 거지... 용이 산군한테 잡혀 있을 리는 없잖아~?"

"그건 나도 모르겠지만..."

"용이라면 네 살 정도는 바꿀 수 있지. 그게 중요한 것 아닌가?"

"그래···. 중요한 건 그거지."

용이 왜 거기에 있든, 산군이 어떤 용무가 있든 나는 내 할일만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찌됐든 용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아무래도 오늘 밤은 고민과 함께 깊어질 듯 했다. 며칠 동안 생각한 결론은 어찌 됐든 용의 환심을 사겠다는 다짐이었다. 자고로 용이란 오만하고, 고고한 존재가 아닌가. 좋아한다는 것들을 가져가 납작 엎드리면, 기분이 좋다면, 인간 하나의 하잘것없는 부탁 정도는···.

"용은 뭘 좋아하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우리에게 묻는 거냐."

"너희들이 말해주는 게 더 신빙성 있을 테니까."

"우리도 몰라. 용은 본 적이 손에 꼽아서. 너도 알다시피, 하늘에서 잘 안 내려 오잖아.

"제비고기를 좋아하는 건 확실하고~?"

"그건 너무 보편적이고. 용들도 식성이 있다고. 어떤 용은 소면을 그렇게 좋아한다던데."

소면? 생각보다 서민적인 음식 이름에 놀랐다. 혹시 소면이라는게 금가루로 반죽해서 수은을 부어 먹는 그런 종류는 아니겠지. 지금 저 기와집에 있는 용이 뭘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으니 일단 있는 걸 준비해 가는게 맞긴 하지만 과연, 어찌 될른지. 산군은 늦은 밤과 새벽 사이에 주로 나가는 듯 했다. 아마 실종과 살인은 이때 나는 것이겠지. 가끔 생필품을 사러 낮에도 움직이는데 내가 며칠 전 본 게 그때인듯 했다. 역시 산군이 없는 틈에 움직여야겠지. 산군이면 용 정도는 아니어도 엄청난 영물이지만... 사람을 벌써 열 명도 넘게 죽인 산군의 앞에 정면으로 서고 싶진 않았다. 그건 너무 위험하지.

늦은 밤, 산군이 길을 나선다. 달빛에 비친 그림자는 확실히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스카에게 망을 보게 하고 품에는 칼날을 넣고 담을 넘었다. 창으로 들어갈 수 있나?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틈을 찾기가 힘들었다.

 

"리카르도, 왼쪽으로."

"나도 알아...~ 근데 길이 없다고···."

“뚫어야 하나?"

"그건 최후의 방법으로 남기고 싶은데···."

그때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직 스카한테서는 신호가 오지 않았으므로, 내부에 있던 사람인듯 했다. 아니, 사람은... 아닌가. 작은 여자애였다. 하지만 예민하게 곤두선 감각이 그녀가 인간이 아닌 무언가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고양이?

"고양이라니! 실례양!"

갑작스러운 호통에 벙이 쪘다. 내가 입밖으로 말했던가? 아닐텐데... 고양이가 아니라 호통치는 아이의 그림자에는 분명 쫑긋한 귀 두개가 걸려있었다. 그렇다고 호랑이는 아닐 거 아니야.

"왜? 내가 호랑이일 수도 있징. 인간들은 너무 편견적이야."

불퉁한 어투지만 공격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웃으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빠의 손님이야?"

"오빠, 라면..."

"응? 손님이 아니었어? 그런데 어떻게 들어왔징..."

 

설마, 설마 그 산군의 여동생, 인가. 그러고 보니 꽤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무엇보다 산군의 집에서 떡하니 오빠라는 호칭을 쓰는 여자아이라니. 어떻게 할까. 산군의 동생이라면 이쪽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있잖아, 혹시 용을 찾고 있어?"

"응, 맞아...~ 혹시, 안내해 줄 수 있을까? 그쪽이나 용을 해칠 생각은 전혀 없어..."

호의적이고 인간적인 태도에 혹시나 싶어 말을 꺼내 보았다. 만약 안된다면 열심히 도망치는 수 밖에는 없는데 말이지.

"왜 용이 보고 싶은데?"

"...살을, 풀고 싶어서···."

여자아이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자신을 따라오라 말했다. 이게 되네... 얼떨떨한 마음으로 긴 마룻바닥을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수록 신성한 기운이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과연 용은 어떤 모습일까. 어째서 지상에 내려왔을까. 정말 이 원망스러운 살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일까.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 안에 길게 늘어진 하얀 머리카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흰색 다음에는 이불을 가득 적힌 붉은색의 피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저를 빤히 쳐다보는 샛노란 눈동자가 보였다. 고고하고 오만하다는 용은 인간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힐데,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우리의 계획에 도움이 될 거라구요!"

"...아미, 아무리 그래도.. 윤의 허락은 받으셨습니까?"

 

아미라 불린 작은 여자아이가 눈을 피하는게 보였다. 용이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는 것도. 아무래도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용은 서쪽을 관장하는 백룡인 것 같았다. 품 속에 넣어왔던 보따리를 꺼내 그의 앞에 내놓았다. 백룡은 잠시 경계하는 듯 하더니 보따리 안에 있는게 제비고기라는 것을 알고는 짐짓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용들이 좋아한다기에 준비해보았는데,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새 인간들은 왜 이렇게 편견적인 걸까요."

"힐데, 꼰대 같아용"

아까 그쪽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저는 소면이 먹고 싶단 말입니다."

"그래서 오빠가 사러 갔잖아요."

"그 맛이 아니라구요. 좀 더, 밍밍하고 향기로운 맛이 났는데..."

"마지막으로 내려온 게 이백년 전이라구 했잖아요. 요리법 하나 정도는 없어지다 못해 가루가 되었을 시간이라구 오빠가 그랬는뎅.“

...아무래도 소문 속에 소면을 좋아한다는 그 용이 백룡이 아니었을까. 리카르도는 그럴듯한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제비고기가 아니라 소면을 준비해 왔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원하는 게 일반적인 소면이 아닌 듯 하니.

 

그렇다면.

"...제가, 그 소면을 만들어 드리죠~..."

용과 호랑이(라고 주장하는 고양이)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들어보니 실존하는 음식인 것 같고, 이백 년 전이라면 못할 정도로 사장된 음식도 아닌 것 같았다. 그정도라면, 노력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당신, 원하는 게 있습니까?"

"살을, 좀 풀고 싶은데···."

말을 들은 용은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역시 이런 걸론 안되나. 그때, 강렬한 신호가 느껴졌다.

"아... 일단, 제 친우가 죽을 것 같아서 좀 가봐도 될까요~?"

"?"

"...산군께서 돌아온 모양입니다~"

움직이기 힘든 백룡을 두고 아미와 함께 대문으로 향하니 나무 타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네놈이냐. 간이 부은 건방진 인간이."

산군은 무표정으로 현신한 스카의 목을 옥죄고 있다가 제 여동생과 함께 온 인간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최아미, 설명해."

"웅! 그게, 음... 이 인간이 우리 계획을 도와주기로 했엉!"

"...?"

"처음 듣는다는 표정인데."

"엥. 아냐 아냐, 도와줄 거야. 그렇지?"

 

거절하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에 일단 고개를 끄덕이자 저쪽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산군은 혀를 차며 스카를 놓아주었고 검게 탄 나무조각은 자연스레 호리병 안으로 들어왔다. 스카, 많이 힘들었구나...

 

'...너 진짜 다음에 좋은 숯 사줘.'

"알겠으니까 좀 쉬어~..."

산군과 함께 백룡이 있던 방으로 돌아와 그들의 계획인지 뭔지를 들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용을 용이라고 불러줄 인간을 찾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안타깝게도 잘 들었다. 저 멍청한 용이 떨어지면서 기억을 잃는 바람에, 용이라는 자각이 부족해. 쯧. 기억이 돌아오고 있다지만 저딴 정신머리로는 다시 승천 못한다."

"그래서 이무기도 아닌 어엿한 용이 인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잘 알아 들었네."

머쓱한 표정의 용을 쳐다보았다. 저딴게... 용?

"그럼 제 소면은..."

"조용히 하시죠, 영감님."

"넵..."

계속 들어보니 저들은 용을 치료하고 하늘로 돌려보내는 것 까지가 그들이 받은 명령이라고 했다. 산군쯤 되어도 하늘의 명은 무시할 수 없는구나, 하는 감상은 덤이었다. 마을과 주변의 탐관오리, 숨어든 범죄자, 악인들을 죽여 피와 살을 회복했다고 한다. 어쩐지, 마을이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 치곤 사람들 표정이 좋아보이더라니. 이 때문이었군.

"...그걸 도와드리면 혹시, 제 살도 좀 해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널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텐데."

 

원하는 바를 말하자 산군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진을 쳐놓은 집에 무단침입에, 여동생과 용까지 마주한 인간이 못마땅한 것이 당연했다. 스카와 전력으로 싸우기도 했고.

 

"오빠! 너무 그러지 마. 저 정도 살이면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엉!"

"역마살인가요. 좀 강하기는 한데, 못 풀 것도 없습니다."

순간 허탈해졌다. 없애려고 기를 쓰고 용을 써도 끈질기게 삶을 괴롭히던 것이 영물에게는 못 풀 것도 없는 것이라. 드디어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과 가족들을 향한 죄책감, 그리고 씁쓸함이 동시에 들었다.

 

"승천은 음력 시샘달의 이튿날 진행할 거다."

"삼 일 남았네요~···"

"그 동안 도망가지 않고 네 할 일을 마치면, 저 마음씨 좋은 호구 같은 영감이 네 청을 들어줄 거다."

"저 듣고 있습니다."

"들으라고 한 말입니다."

삼일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몸을 거의 회복한 백룡의 부탁으로 소면을 하루에 열 다섯 그릇 정도 만들며 맛을 재연하려 애쓴 일이나, 아미가 저희가 온 산에 대해 얘기해 주는 걸로 시간을 채웠다.

"이 맛입니다! 이거에요! 요리법을 자세히 적어주세요, 다음에 써먹을 일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이딴게... 용? 드디어 자신이 찾는 요리법을 알아냈다 흥분한 용의 흰 뒷통수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용들의 미각은 다 이런걸까. 저런 밍밍하고 기름은 잔뜩 뜨고 낯선 향신료 냄새가 나는 음식을 용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소개했다간 사기꾼이라고 퇴짜를 맞기 딱 좋아 보였다.

"다신 인간계로 올 생각 하지 마시죠."

"하늘에서는 이런 거 없단 말입니다."

"알 바입니까."

"그러고 보니, 아미는 어느 산에서 왔어~? 저 분을 보면 꽤 이름난 산일 것 같은데~···."

"우리? 북악산이라구 알아? 거기서 왔엉~"

"어쩐지···."

한양에 있는 산이다. 정기와 기운이 남달라 도성도 그 산세를 따라 만들었다는 산이 아닌가. 저 정도 현신과 힘이 있는 산군의 산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저런 산군을 스카가 혼자서... 고생 좀 했겠구나 싶었다. 떨어진 백룡을 다시 하늘로 올려보내는 날은 날씨가 흐렸다. 곧 비가 올 것만 같이 어두컴컴한 하늘이 펼쳐졌다. 용이 승천하는 날은 상서로워야 하지 않나...

"그야 비를 관장하는 용이 드디어 올라가니까. 이번 겨울에 눈이 별로 안 온 것도 저거 탓이다."

산군, 윤의 비아냥에도 힐데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하늘을 응시할 뿐이었다. 바람에 금실로 수놓은 비단 자락이 펄럭였다.

"저거, 곤룡포 아닙니까...? 그것도 황룡포인데. 괜찮은 거 맞나···."

"그나마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옷이라도 입어야 문지기가 들여보내징! 힐데가 원래 입던 건 문전박대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라구."

주변의 소란에도 역시 용은 아무 미동도 없었다. 몇 백 년 만에 큰 행사에 주위에 잡신들이 몰려든 것이 느껴졌다. 주위에 인간은 나 하나뿐인 듯했다.

 

그 순간, 용이, 백룡이 날아올랐다.

 

눈으로는 무척 천천히 올라가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아주 빨랐다. 머리칼과 옷이 흩날리고, 넓은 하늘에 그 몸이 띄워질 때 용이 현신했다. 용은 지척의 산기슭을 모두 덮을 만큼 거대했고 그 기세에 거대한 용오름이 생겨났다. 거센 바람에 눈을 반쯤 감고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반 각이 지났을 때, 옆에서 윤이 신호를 주었다.

"지금."

"...용이 하늘로 올라간다."

 

본래라면 이무기를 용으로 만드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용을 다시 올려보내는 말이었다. 곧 하늘의 문이 열렸다. 용은 주위를 한바퀴 빙글 돌더니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다. 흰 비늘과 흰 수염을 가진 용은 그렇게 요란하게 떠났다.

 

"끝난 건가···."

옆에 있던 아미가 해맑게 웃으며 드디어 산에 돌아갈 수 있다고 기뻐했다. 너구리에게 산을 맡겨놓긴 했지만 영 불안하다나. 나는, 나는...

"네 살도 이제 풀렸으니, 갈 길 가라."

 

믿기지 않아 손을 쥐었다 펴 보았다. 달라진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완전히 달라졌다는게 신기했다.

 

"오늘은 깊이 자겠네. 그렇지?"

"글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

"살이 풀렸으니 우리를 버릴 건가."

"헉, 진짜?"

"뭐라는 거야~... 누굴 뭘로 보고···."

그 질기고 원망스럽던 살을 풀어낸 날 밤에는 꿈을 꿨다. 부모님이 나오는 꿈이었다. 조나단이 말하길, 아침에 깨우려고 보니 내가 울고 있었다고 했다.

"이런 꿈 따위로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이상하지···."

"? 릭, 너 몰라?"

"...?"

"어제 왔잖아. 너희 부모님. 백룡이 보낸 것 같다던데. 원래 용들은 은혜를 잘 갚아."

 

그럼 그게 진짜 부모님이었다고. 내 모든 사죄와 용서를 구하는 말을 묵묵히 들어준 후에 입 맞추고 떠난 그들이...

"용 한 번 도와준 걸로 인생이 이렇게 풀릴 일인가···."

"그래서 기연이라고 하는 거겠지. 용 만나기가 어디 쉬워?"

"다 타버린 장승이나 부러진 칼날 줍기는 뭐 쉽나~..."

기억을 잃은 용, 산을 너구리에게 맡기고 서쪽 끝자락에 온 산군, 슬픔을 먹고 자란 불가사리, 마을을 지키지 못한 장승. 그리고 한평생 살로 고생한 인간. 한 생에 만나기도 어려운 인연들이다.

"다음 생에는 좀 단순하게 살고 싶네~···."

"너는 기질이 예민해서 그러기 쉽지 않을 거다."

 

 

이제 다시 정착해서, 남은 이들과 사는 일만이 남았다. 산 자는 살아야 하므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