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ger

센티넬. 크리처의 등장과 함께 탄생한 그들은 처음엔 초능력자, 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곧 그들이 대거 징집되어 전장에 투입되고 난 이후부터 정부에서는 그들을 ‘센티넬’이라 명명했다. 초반에는 엄청난 기세로 승기를 잡은 듯 보였으나 그것은 잠시였을 뿐, 전쟁 중 센티넬의 치명적인 결함이 드러났다. 그들은 어째서인지 능력을 과다하게 사용하면 ‘폭주’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이는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어 아군조차도 휘말려 죽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군의관 새뮤얼 한에 의해 특정한 파장을 가진 인간의 신체접촉으로 ‘폭주’를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정부는 새뮤얼 한이 기록한 차트를 토대로 연구를 거듭해 그 ‘특정한 파장’을 잡아낼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센티넬의 고삐를 쥐게 된 이들을 가이드라 명명하고 그들의 자원입대를 촉구하게 된다.
그렇게 조직된 것이 블랙배저. 두차례의 전쟁과 함께 신설된 센티넬과 가이드로 구성된 특수군. 그들은 주로 개간을 나가 크리처를 사살하고 영토를 순찰을 도는 임무를 맡고는 한다.
그리고 여기, 녹안의 유명한 배저, 2차 전쟁영웅 리카르도 소르디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그는 여타 배저들과 다를 것 없는 임무를 수행하지만, 그에게는 조금 특이한 점이 두가지가 있다.
첫째. 그는 일단 센티넬이다. '일단'. 보통 센티넬이라 하면 힘이 매우 세고, 오감이 발달하여 기민하고, 초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초능력으로 크리처를 사살하는 모습 또한. 화염을 뿜어 내 불태워버린다거나, 냉기로 얼려버린다거나, 염력으로 크리처를 뭉개버린다거나 하는 모습. 다만 그것은 전투형 센티넬에 한정된 모습이며, 대중에게 주로 보여지는 센티넬은 거의 대부분이 전투형이다. 그리고 리카르도 소르디의 특이점은 여기서 발생한다. 그는 여타 유명 배저들과는 달리 전투형 센티넬이 아니다.
그래, 리카르도는 서포터형 센티넬이다. 그 능력은 증폭. 말 그대로 타 센티넬의 능력을 대폭 향상시켜주는 능력이다. 본인에게는 쓸 수 없는 정말 타인의 서포트에만 치중된 능력. 하지만 리카르도는 무려 배저 전투력 순위 8위에 랭크된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특기는 크리처 사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릭! 조심하십쇼!”
“뭐야~..”
콰득, 쿠웅..
이 일은 힐데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릭이 서포터형 센티넬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힐데가 놓친 크리처를 리카르도는 한손으로 잡아 바닥에 매다 꽂아버렸다. 움푹, 패이는 아스팔트와 뭉개진 크리처. 그리고 곧이어 폭발하는 뭉개진 그것... 힐데는 그 순간을 평생이 가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그럴 것이다.
“....릭?”
“으응~?”
“괜, 찮으십니까?”
“별거 아냐~.. 다 묻었네, 좀 닦아야겠어...”
리카르도는 아무렇지 않게 물티슈로 손을 닦아낸 후 힐데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힐데의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갔다. 서포터형 아니었던가? 증폭은 본인한테 못쓴다고 들었는데? 아니 그보다 한손으로 뭉갰어, 게다가 터졌다고!
“힐데~?”
“헉.”
“뭐야, 왜이래~..”
“릭, 서포터형 아니셨습니까...?”
힐데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기사, 방금 크리처를 맨 손으로 뭉개 터뜨려버린 사람 앞에서는 누구나 다 조심스러워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릭은 그런 힐데를 바라보며 픽 웃었다.
“그래서~.. 내가 서포터형이라 전투는 잼병일 줄 알았다는 거야 뭐야...”
“절대! 절대 그런게 아닙니다!”
“뭐가 아냐, 새꺄~..”
“진짜 아니라니까요, 릭..”
힐데는 제가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것을 무시하며 걸어가는 릭의 뒤꽁무니를 졸졸 쫒아갔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힐데의 말이 끝나자 뒤에서 푸흡,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앞에 앉은 아미도 빙그레 웃고 있었다.
“왜 다들 웃으시는 겁니까...”
“아니, 그냥. 상황이 웃겨서.”
“어디가 웃깁니까, 저는 정말 놀랐다고요.”
칭얼칭얼. 힐데의 칭얼대는 모습에 아미와 스카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에게는 익숙하지만 이 후임에게는 꽤나 낯설고 놀라운 장면이겠거니 싶긴 했다.
“릭이 서포터형이긴 해도 말이야, 전투실력은 배저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나단 말이지.”
“릭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뭉개서 터뜨리실 줄은...”
힐데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던 두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징. 나두 처음엔 릭이 증폭을 그렇게 쓸 줄은 몰랐어.”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릭은 단순 서포터형 센티넬이 아니라는 소리지. 능력 분류 상 서포터형으로 되어있을 뿐이야. 따지고 보면 근접전에서 만큼은 뛰어난 전투형 센티넬이니까.”
힐데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곧 나타난 릭에게 가차없는 잔소리를 들으며 그 능력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지금 내 패를 다 까발리라는 소리야~?”
눈썹을 들썩이는 릭의 목소리엔 분명한 장난기가 묻어났지만 힐데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은연 중에 제가 더 강하고 릭은 서포터형이니 후방에서 저를 지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들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 것은 릭이 능력을 정확히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 지 몰랐던 탓이었지만.
“그게 아니라, 다음에 또 함께 전투할 때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미리 알아둬야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애 그만 놀리고 이제 알려주지 그래?”
릭은 스카를 가볍게 흘겨보며 제 능력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그의 능력 ‘증폭’은 단순히 타 센티넬의 능력만을 증폭시키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 손에 닿은 물체의 분자 운동에너지를 증폭시킬 수도 있다는 것, 힐데의 앞에서 해치웠던 크리처는 체내 수분의 분자 운동에너지를 증폭시켜 기체화 함으로 터지게 만들었다는 것 등. 설명을 들은 힐데는 입이 떡 벌어진 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아니 누가 그런...”
“별로 없지, 누가 증폭을 저런 식으로 사용하겠어. 정확히는 못하는거지만.”
“맞아, 릭이랑 비슷하거나 같은 능력을 가진 후배들이 연습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거의 대다수가 물체를 분자단위로 잡아내지 못하더라구.”
“그럼 그게 쉽게 되는 건 줄 알아~? 쉬워보이니 멋대로 달려들었다가 막상 뜻대로 되지 않으니, 지레 내빼는 것들이 문제지...”
그런데 이때, 야생의 크리처가 나타났다. 랄까, 그 자리에 앉은 네사람의 핸드폰이 경보를 울려대기 시작했다. 본부 근처에 크리처 출몰.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일은 아닌지라 네사람 모두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릭이랑 내가 6단계 맡을게!”
아미의 외침과 함께 릭은 곧장 달려나갔다. 힐데는 스카와 함께 공중에서 포를 쏘려고 하는 마녀를 처리하는 것에 집중했다. 달려나간 아미와 릭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6단계라면 그 두사람이 손쉽게 처리할 것이 분명하니까. 하지만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힐데와 스카는 꽤나 손쉽게 크리처를 치워냈다. 힐데가 검격으로 마녀를 떨어뜨리고, 스카가 커다란 창으로 꿰뚫어 처리했다. 그리고 무전을 받지 않는 아미와 릭에게 달려갔다.
“앗, 스카! 힐데!”
“아미, 무슨일입니까?”
“릭은 어디있어?”
아미는 크리처의 사체 위에서 방방 뛰고 있었다. 역시나 두사람도 손쉽게 해치운 모양이다, 싶었는데 릭이 보이지를 않았다. 아미는 폴짝, 크리처 위에서 뛰어내려 힐데와 스카 앞으로 다가왔다.
“예현오빠가 병동으로 끌고 갔어!”
“예? 다치신겁니까?”
“예현이?”
두사람의 아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키우고 놀란 얼굴을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전투는 별 탈 없이 끝났고 두사람 모두 다친곳은 없다고 했다. 다만 전투 후에 그곳을 지나가던 예현이 릭을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다가와 그대로 끌고가버렸다는 것이다.
“아마 또 가이딩을 받지 않은거겠지?”
“안그래도 새뮤얼이 릭을 잡아오라고 하긴 했었습니다.”
“어휴. 그럴 줄 알았지. 잘됐네, 이 참에 가이딩 받고 푹 쉬라고 하지 뭐.”
남겨진 세사람은 본부의 공용샤워실에서 크리처의 피를 씻어낸 후 옷을 갈아입고 병동으로 향했다.
“소르디. 가이딩 꾸준히 받아야 한다고 했지.”
“예...”
“수치가 이렇게 낮은데.”
“죄송합니다...”
23%. 정말 아슬아슬한 수치에 예현은 한숨부터 나왔다. 릭은 현재 가이딩 수치를 나타내는 기기를 부착한 채 예현의 손에 손목을 붙들려 병동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 표정에서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꼈지만 예현은 가이딩을 수시로 거부하는 이 후임을 두고 볼 수가 없었기에 손목을 놔주지 않은 채 릭의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핸드폰으로 업무를 이어나갔다. 본래라면 예현이 직접 가이딩을 할 필요까지는 없겠으나 매번 수치가 70% 정도만 채워지면 새뮤얼과 다른 가이드를 피해 사라지는 이 후임을 이렇게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예현 정도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리카르도 소르디의 두번째 특이점이었다. 너무 예민한 탓에 가이딩 접촉을 피하는 것. 가이딩을 받을 때의 느낌이 이상하다나 뭐라나. 다른 센티넬들은 가이딩을 받으면 눈에 띄게 안정이 되는데, 릭은 온 몸이 따끔거리는 느낌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오, 드디어 제대로 된 가이딩 받는거냐?”
“스카...”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지, 그거 네 업보다 임마.”
“아니거드은... 견딜만 하니까 견딘거야. 1차 가이딩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말하며 힐끔, 기기의 패널에 떠있는 숫자를 본 릭이 슬그머니 예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예현은 그것을 알아차렸으나 오늘은 정말 이 아이의 가이딩 수치를 풀로 채워주겠다 마음을 먹은 터라 부러 모른 채 했다. 넌시지 협박같은 말도 던지며.
“나랑 가이딩 룸 잡고 싶은건 아니지, 소르디?”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그래. 그럼 얌전히 있어.”
예현의 말에 완전히 체념을 한 건지 패널을 흘끔거리는 것을 멈춘 릭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 타일의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예현이 릭의 손목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84%네. 나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스카? 소르디 가이딩 좀 해줄래?”
“예.”
“소르디. 가이딩 풀로 받아, 새뮤얼한테 확인 할거니까.”
“네에...”
예현이 떠난 병실. 아미와 힐데는 릭의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금세 자리를 떠버렸고 남은 것은 스카와 새뮤얼 뿐.
“빨리 해. 얼마 안남았으니까 짧고 굵게 끝내는게 낫지 않겠냐?”
“저녀석이랑 포옹 이상의 가이딩은 하고 싶지 않은데요~..”
“난들 뭐, 다른 줄 아냐. 손이나 이리 내.”
스카가 릭의 눈 앞에 손을 내밀어 흔들며 재촉했다. 릭은 미간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제 손을 스카의 손 위로 올려두었다.
“으. 짧고 굵게. 오케이?”
“빨리 하기나 해...”
스카는 해괴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대다 릭의 손등에 입술을 꾹 눌렀다. 그러기를 약 1분...
“으아악!”
“으, 으악, 징그러, 어우, 징그러. 최악이야...”
패널에 100이라는 선명한 숫자가 떠오르자 마자 몸을 튕기듯 떨어진 스카와 릭은 각자 입술과 손등을 벅벅 문지르며 경기했다.
“참나... 가이딩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번 왜 저러는지.”
새뮤얼만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 볼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