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ger

올해 제국의 겨울은 유독 서늘하다. 제국민들도 저마다 외투를 다시 장만하거나 장작을 더 쌓아두거나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 귀족들이야 이런 건 하인의 몫이니 신경 쓰지 않겠지만, 홀로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이들은 창틀에 물방울이 맺히는 주부터 준비하곤 한다. 리카르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소르디 가문의 도련님을 때려치운 지 오래였으므로 하인이 있을 리 없었다. 마탑에도 물론 마법사들을 위한 고용인 한 둘 있는 법이지만. 리카르도는 타인을 잘 믿지 않았다. 특히 사적인 공간을 내주는 것? 목을 쳐달라고 비는 지경 아닌가.
“리카르도. 겨울나기는 좀 어때?”
“문제없어. 애초에 이미 겨울인데 그걸 왜 물어보는 거야. 테오.”
“넌 워낙 똑부러지니까. 알아서 잘 준비했을 거 같더라.”
“그런 질문의 의도가 늘 좋았던 적이 없는데~”
“눈치 하나 참 빠르다. 혹시 겨울 요정 몇 개 나눠줄 수 있나 해서.”
“겨울 요정? 상점에 재고가 없진 않을 텐데.”
“요 며칠 아이들이 열병을 자주 앓아서 그런지. 갑자기 구해오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쓴 거 같더라고.”
겨울 요정. 요정이란 이름치고 정말 정령이나 그런 영역은 아니다. 요정들이 겨울 요정이란 거짓을 붙일 정도로 맛이 좋은 열매라나. 유래는 몇 가설이 있다. 전해지는 민가 같은 저런 이유도 있고, 겨울밤이나 낮에 사냥꾼들이 짐승들을 사냥하러 가면 그들이 겨울 덤불 속의 무언가를 코를 박고 먹어 그것이 요정인 줄 알았단 말도 있고. 덤불에 나는 열매니 곧잘 눈에 파묻히기에 그리 보인 게 아닐까? 상상력이란. 그런 열매다 보니 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특히 열병 앓고 난 직후나 앓는 날 아이들의 입가심 용으로 사주곤 했으니까. 최근 유행한 병 때문인 듯했다. 기관지, 목이 붓고 오한이 드는 병. 흔해 빠진 전염병 중 하나였지만. 몸이 약한 아이들은 목숨을 잃을 정도라고 하니 사제들을 안 보내는 곳도 드물었다.
“유감이지만, 나도 그건 따로 많이 사두질 않았어. 얼마나 필요한데?”
“한 주머니?”
“보통 한 주머니 정도 산단 걸 잊어버린 건 아니지?”
“하하! 농담이야. 릭. 한 움큼만 부탁해.”
“그래.”
리카르도는 마지못해 큰 가죽 주머니 안의 붉은 열매를 나누어주었다. 그놈은 뭐가 좋은지 실실 웃으며 자리를 뜬다. 어쩐지 평소보다 많네? 살짝 고개 저은 리카르도는 곧 더 혹독해질 계절을 떠올리며 잉크가 얼지 않게 서랍 안쪽으로 넣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색이 바랄 걱정은 없는데. 꼭 창가에 두면 서리가 낀다니까. 잉크가 왜 어냐며 며칠 전까지도 씩씩거리던 테오의 얼굴을 떠올리니 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용인이 없으면 마치 여섯 살배기 아이가 되는 마탑이라니. 가장 박식한 이들이 모였다는 이 마탑 이름이 참 울겠어. 그들이 그리 신경 쓰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리카르도는 한숨을 쉬었다. 전염병, 그것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아마 추위로 동사하는 이들이 나오지 않을까. 리카르도는 화염병을 던지면서 시체를 태우던 마부를 떠올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탄 내가 여기까지 나겠어.”
리카르도의 중얼거림은 누구도 듣지 못했다. 들을 이도 없을뿐더러 그리 좋은 내용이 아니었으니, 들은 자들은 귀를 조용히 씻어냈으리라.
찾아온 겨울, 리카르도는 창백하게 질려 토끼털로 만든 옷을 더 동여매는 동료를 보았다. 마탑이 직접 마법사들에게 의뢰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그놈의 겨울 요정이 또 화근이었다. 근방 영지의 귀족가 삼남이 병으로 앓아누웠는데 겨울 요정만을 먹는다고. 사들이다 못해 이제는 식생지에서 가까운 마탑으로 의뢰까지 주었다나. 그 영지에 널린 게 설탕이고 치즈고 과일일 텐데? 엉엉 울며 고집을 쓰다 숨이 껄떡 넘어간 어린 자식에 그 영주도 두손 두발 다 든 모양이었다.
“세이지. 계속 그렇게 발 멈출 거야~?” “리카르도. 이건 미친 짓이야. 이 눈보라에서 어떻게 찾으란 거야!”
“눈보라?”
리카르도는 코웃음 쳤다. 쌓인 눈이 많아 바람에 흩날리고 있을 뿐이다. 엄살은. 리카르도는 같은 귀족 출신이면서도 아직도 열 살 도련님 행세하는 세이지가 영 탐탁치 않았다. 가르칠 마음은 없었지만, 리카르도라고 다 큰 성인을 돌볼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적당히 해.”
“젠장. 넌 뭐든 그렇게 잘났네.”
“적어도 지금 네 앞에선~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핑계 대지 마.”
리카르도는 세이지의 빈정거림을 무시하고 마저 눈밭을 헤치고 덤불을 찾았다. 하다못해 숲에 있는 짐승들의 발자국을 찾았다. 겨울 요정은 이 혹한에서도 먹으러 다니는 과일이었으니까. 사실 영양분이 그렇게 많냐고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리카르도는 어렸을 적부터 숱하게 먹었는데도 큰 이상이나 변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저 어머니가 그것을 잘 으깨 꿀과 섞어 차를 만들어주셨던 기억만이 선명했다. 타르트를 만들기에는 리카르도가 묵직한 걸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동생들은 쿠키나 케이크 위에 듬뿍 얹어 먹는 잼을 더 좋아했었다.
“세이지!”
“너무 추워.”
“그래서 그렇게 처박혀 있겠다고?”
“나무 뒤에 있으면 얼어죽진 않겠지.”
세이지는 굵은 나무 하나를 발견하자마자 그 뒤에 숨어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리카르도는 짜증을 감추지 않고, 속된 말로 그를 야려보다가 어쩔 수 없이 다시 홀로 발을 떼었다. 결국 바람이 거세게 불 때마다 아래에 쌓인 눈 결정들이 흩날리고 시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마법까지 쓸 일은 아닌데. 리카르도는 빛무리를 불러내며 다시 한 발씩 떼었다. 빛무리 안 온기는 이정표가 되어주듯 곁에 머물렀다. 눈구름이라도 몰려오는지 점점 어두워지는 주변에 리카르도의 걸음은 더 빨라졌다. 왜 이리 구석진 곳에 있는지. 이만큼 눈이 오지 않았다면 진작 찾았을 텐데. 방향 감각을 잃지 않은 게 기적인가? 리카르도는 동면 중일 마수의 굴 근처까지 걸어와서야 겨울 요정을 찾았다. 찾기 쉬운 곳의 겨울 요정은 하인들이나 기사들, 동물들이 죄 먹어버린 듯했다. 겨울 요정을 한 주머니 채취한다.
“이만하면 됐지.”
리카르도는 더 이상의 채취나 탐색은 사양이었다. 세이지는 이미 도망치듯 마탑으로 돌아갔는지 그림자나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멎은 게 다행이다. 리카르도는 어렵지 않게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바람이 심하면 발자국마저 지워지곤 하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다만 곧 정말 눈이 내릴 듯 주변이 더더욱 흐려져 걸음을 빨리할 수밖에 없었다. 부츠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 축축해진 로브를 화로 근처에 걸어 말렸다. 세이지는 마탑주에게 불려 갔다고 한다. 파트너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왜 너만 돌아왔느냐며 추궁받았다나. 리카르도는 속으로 그가 근신 처분을 받길 원했다. 시인이니 무희니 만나러 다니기 바쁜 놈이었으니까.
“이제 진짜 쉴 거예요~... 저 좀 내버려 두시죠.”
리카르도는 마탑주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렸을 적부터 리카르도를 봐온 마탑주는 그의 기분이 저조하단 걸 금방 눈치챘다. 단순히 귀찮은 일 몇 번에 이리 짜증을 냈더라면 진작 쫓아냈을 텐데. 겨울은 늘 리카르도 기억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것인가. 마탑주는 리카르도의 과거를 아는 몇 없는 인물이었지만, 그 과거에 매몰될 정도로 리카르도가 가족을 사랑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었다. 마법사들의 ‘성격’은 익히 잘 알려진 대로 절반은 개차반 절반은 나르시스트였다. 우스갯소리로 저들끼리 하던 말이 있을 정도로 학문 탐미 외에는 지독히 인간적이지 못한 자들이었는데. 리카르도는 아예 달랐다. 괜히 마탑주가 차기 마탑주로 리카르도를 점 찍어 둔 게 아니었다. 세계는 바뀔 것이고, 그렇다면 마법도 바뀌어야만 하지 않나. 젊은이들은 피로 마법을 쓰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네 근본 없는 성질머리는 누구에게서 온 게냐?”
“아버지겠죠.”
리카르도는 시큰둥하게 대꾸하고, 별다른 대화 없이 자신의 방으로 훌쩍 들어가 버렸다. 마법사들의 공간은 말 그대로 ‘집’의 영역이었으니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마탑주는 더 말하지 않고 돌아갔다. 리카르도 안의 기억을 꿰뚫어 볼 자신도 없고.
리카르도는 그놈의 겨울 요정이 원수 같았다. 그깟 게 뭐라고. 겨울날 다같이 모여 앉아 마셨던 차와 달콤했던 쿠키 맛을 떠올리게 하는지. 리카르도는 자신이 더 이상 귀족이 아니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그 시절 안에 머무르는 기분이 들었다. 마탑에 오르기 전, 아버지와 의절하고 집안과도 몸을 틀었는데. 여전히 그의 생일날에는 마탑 앞으로 익명의 선물이 당도한다. 그 행렬이 길어 오죽하면 부모님 집에 한 번 가보라며 너스레를 떠는 동료들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모두 리카르도의 성질머리를 알면서도 꼭 한 마디씩 거들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래서 리카르도는 겨울이 싫었다. 눈이 올 만큼 혹독한 계절에도 꿋꿋하게 사람을 쓰고, 마차를 불러다 탄생을 축복하는 그들이.
사실 아버지가 뒤에서 얼마나 추잡한 일을 벌이는지 알았다. 아버지는 다 가족과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상 사람을 고문하고 회유하다 못해 장기 말로 써먹다 버리는 일이 어찌 떳떳하겠나. 그걸로 모자라 뒷세계에선 정보상? 온갖 음지와 양지의 정보가 쏟아지는 공간을 보았던 리카르도는 경외심보단 역겨움이 먼저 들었다. 우리는 필요 이상 남들을 짓밟고 살아온 것이라고.
그러니 그 겨울 요정은 더 입에 대고 싶지 않았다. 리카르도는 몇 가지 마법약을 위해 구비해두는 게 전부일 정도로 그 열매가 싫었다. 잼으로 가득 퍼먹을 만큼 사들일 수 있었던 집안의 부가, 타인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내가 배운 마법도 그렇겠지만. 리카르도는 자신의 위선에 헛웃음을 떨치지 못했다. 결국은 온갖 수혜는 다 받은 주제에 견딜 수 없어 도망친 것뿐인 자신이. 여동생과 남동생의 사교계 첫발을 함께하지 않은 내가. 선물을 보낼 것을 그랬다. 마탑에서 한참 연구와 수련에 푹 빠져있을 때라 날아온 편지를 너무 늦게 읽었었다. 동생 둘은 씩씩하게 자라 몇 달 뒤에는 마탑에 한 번 방문하겠단 편지를 붙였다. 리카르도의 생일이 지난 이후, 혹은 그 생일 날에 맞추어 오겠단 문장.
이건 아버지가 적게 했을까. 어머니의 바람일까. 아니면 정녕 너희가 이 못난 장남을 용서해 주려는 걸까. 알 수 없었다. 얼굴을 보아야 한단 걸 알면서도 리카르도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리카르도는 겨울 준비에 왜 평소보다 더 많은 겨울 요정을 준비했는지 스스로 알고 있으나, 차마 그 사실을 인정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족을 그리워하고, 여전히 그리워해 홀로 그것을 쌓아두려 했던 낯부끄러움만 남을 듯해서.
겨울은 여전히 추웠다. 여전히 지독하게도.





